감기에서 입원까지
13개월 된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 가만히 있어도 콧물이 줄줄 흘렀고, 기침할 때마다 가래가 가득 찬 듯한 불편한 소리가 들렸다. 이전에도 감기와 장염이 한꺼번에 찾아와 고생했던 적이 있어, 이번에도 가까운 동네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였다.
하지만 주말이 되자 아이는 먹는 것 자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콧물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었던 걸까. 아니면 목이 아팠던 걸까. 어떻게든 먹여보려고 애썼지만,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분유는 물론 입으로 가져가는 모든 음식을 거부했다.
아이가 계속 먹지 않으면 탈수가 올 수 있으니 수액이라도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둘러 아이에게 옷을 입히고 주말에도 진료하는 큰 소아과 병원을 찾아갔다.
아픈 아이들이 어찌나 많던지. 한참을 기다린 끝에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아이는 이제 청진기만 봐도 울음을 터뜨렸다. 피검사를 하고 수액도 맞아야 한다는 말에, 주사를 맞기도 전부터 내가 다 괴로웠다. 이전에도 채혈과 수액 때문에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주삿바늘을 넣을 혈관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팔을 이리저리 주무르며 혈관을 찾고, 바늘을 찌른 뒤에도 위치를 맞추기 위해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아이는 몸부림치며 대성통곡했다. 그런 아이를 품에 안고 지켜보는 시간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겨우 수액 라인을 잡고 방으로 이동하던 중, 간호사 선생님에게 라인이 빠진 것 같아 다시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순간적으로 짜증과 화가 치밀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속에서는 열불이 났다.
이번에는 발등에 바늘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렇게 약만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왔고, 아이는 다음 날까지도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피검사에서 혈당 수치가 너무 낮게 나왔던 터라 결국 큰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이곳에서도 수액 라인을 잡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성공했고 입원 준비를 시작했다.
이전에 와이프가 5인실에 입원했을 때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며 이번에는 2인실로 병실을 잡아주었다. 보호자는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었기에 내가 아이와 함께 입원하기로 했다.
수액걸이를 끌고, 걱정과 두려움을 안은 채 아이와 병실로 들어갔다.
병실에서의 첫날밤
2인실에는 이미 다른 아기가 입원해 있었다. 한쪽 침대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고, 우리는 반대편 침대로 가 짐을 대충 올려두었다.
전날부터 주사와 검사를 여러 차례 받아서인지 아이는 내 품에서 떨어지자마자 두 팔을 뻗으며 안아달라고 울기 시작했다. 서둘러 짐을 정리한 뒤 아이를 안고 침대에 기대앉아 달래기를 반복했다.
얇은 커튼 너머에 있는 아기와 엄마가 계속 신경 쓰였다. 문이 닫혀 있는데도 옆방 5인실에서는 아기들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만약 우리도 5인실에 들어갔다면 와이프 말대로 지옥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프가 먹으라고 사준 샌드위치와 음료가 있었지만 손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결국 울다 지친 아이와 함께 좁은 침대에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갑작스러운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다급히 아이를 안아 달래며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2시였다. 그때 아이에게서 응가 냄새가 났고,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 새벽에 어떡하지?'
기저귀를 확인하니 설사를 조금 한 상태였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간호사를 호출하라는 말이 떠올랐다. 침대 위쪽에 있는 호출 버튼을 누르자 무슨 일이냐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응가를 해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다행히 간호사 한 분이 와주셨고, 함께 화장실로 가 아이를 씻기고 기저귀를 갈 수 있었다. 물론 그동안 아이는 병실이 떠나가라 울었다. 기저귀를 갈고 다시 안아 달래기까지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이후에도 아이를 안고 달래기를 반복하다 몇 시에 잠들었는지도 모른 채 좁은 침대에서 다시 함께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옆에는 긴 수액줄에 연결된 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오늘이라도 빨리 병원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곧 아이도 우렁찬 울음과 함께 잠에서 깼다. 품에서 내려오지 않으려 코알라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물을 잘 마신다는 사실이었다. 내 품에 안겨 물컵을 두 손으로 꼭 잡고, 마치 살기 위해 마시는 것처럼 열심히 물을 마셨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지자 의사 선생님이 가운을 입은 여러 사람과 함께 회진을 돌며 병실로 들어왔다. 아이에게 의사 선생님은 이미 무서운 존재가 되어버린 듯했다. 청진기를 대려고 다가오기만 해도 울음을 터뜨렸다.
진료를 마친 의사 선생님은 아이가 무언가 먹지 않는다면 퇴원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와 함께 병원에 갇혀버린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다.
퇴원을 위한 전쟁
뭐라도 먹여야 했다. 와이프에게 상황을 전하고 아이가 먹을 만한 것은 전부 챙겨 오라고 했다.
와이프는 분유와 요거트, 쌀과자, 바나나 등을 바리바리 싸 들고 장모님과 함께 병원으로 왔다. 병실에는 환자와 보호자 외에는 들어올 수 없어 복도 의자에 앉아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퇴원을 위한 전쟁이었다.
누운 자세가 채혈과 수액 바늘을 맞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걸까. 분유를 먹이려는 자세만 취해도 아이는 온몸을 바둥거리며 울었다. 다행히 요거트와 쌀과자는 조금씩 받아먹기 시작했다.
와이프가 다시 분유를 먹이려고 애쓰는 동안 나는 잠시 병실로 돌아갔다. 전날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터라 사두었던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먹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먹이기를 시도했지만 아이는 더 이상 먹지 않았다. 저녁에 다시 도전하기로 하고 와이프는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아이를 데리고 병실로 향했다.
엄마를 만나서였을까. 아이가 조금 안정을 찾은 듯했다. 침대에 혼자 앉혀 두어도 울지 않았고, 가져온 장난감과 인형을 꺼내주자 제법 잘 놀았다.
그 모습을 보고 중간중간 분유를 시도했지만 여전히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래도 물과 과자는 조금씩 잘 먹기 시작했다.
아이가 잘 놀고 조금이나마 먹는 모습을 보니 저녁에는 퇴원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그런데 기저귀를 갈다가 응가에 피가 조금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깜짝 놀라 간호사분에게 말씀드렸고, 검사를 위해 응가를 가져가셨다. 다행히 아이의 컨디션은 좋아 보였다. 검사 결과는 저녁 회진 때 의사 선생님이 확인해 주시기로 했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의사 선생님이 다시 병실을 찾았다. 검사 결과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하셨지만, 다음 날 오전까지 상태를 지켜본 뒤 퇴원하라고 하셨다.
오늘 저녁에 퇴원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안 된다고 하셨다.
결국 아이와 병원에서 하룻밤을 더 보내야 했다. 다시 막막함이 밀려왔다.
병실에서의 두 번째 밤
저녁에 와이프가 다시 병원을 찾아왔다. 잠시 아이를 맡기고 샤워실로 향했다.
금방 퇴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하룻밤을 더 보내야 한다니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의 전쟁을 준비하는 기분으로 샤워를 마쳤다.
그사이 옆 침대에 있던 엄마와 아이가 퇴원했다. 2인실을 아이와 둘이서만 쓰게 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샤워를 마친 뒤 와이프와 함께 다시 병원 복도에서 아이에게 이유식과 요거트, 과자를 열심히 먹였다. 내일만큼은 꼭 퇴원할 수 있기를 바랐다.
와이프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는 아이와 병실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장난감과 인형을 꺼내 놀아줬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아이는 침대 난간을 잡고 일어나 흔들어 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탐색하기도 했다. 나는 틈틈이 물과 과자를 건네며 분유도 얼른 먹어주기를 바랐다.
밤 10시쯤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쳤다. 내일은 꼭 퇴원하기를 기도하며 잠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끌벅적한 소리에 눈을 떴다. 옆 침대에 새로운 아기와 엄마가 들어오고 있었다. 이제 우리 아이도 많이 울지 않으니 괜찮겠지 싶어 다시 잠들었다.
하지만 새벽 2시, 어제와 똑같이 아이의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이번에도 새벽 응가였다.
데자뷔 같은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침착했다. 간호사분을 호출해 아이를 씻기고 기저귀를 갈았다.
문제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옆 침대 아기까지 공명하듯 울음을 터뜨렸다는 것이었다.
옆 아기의 울음소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낮에 잠을 많이 자서였을까. 기저귀를 갈고 난 뒤에도 아이는 좀처럼 잠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새벽 4시가 넘도록 아이를 안아주고 놀아주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또다시 기절하듯 아이와 함께 잠들었다.
드디어 집으로
"아버님."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반이었다.
어제 아이가 혈변을 봤으니 엑스레이를 한 번 찍어봐야 할 것 같다며 깨우는 소리였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아이를 안고 엑스레이실로 향했다. 오열하는 아이를 붙들고 아침부터 또 한 번의 전쟁을 치렀다.
병실로 돌아와 아이를 진정시켰다.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오시기 전에 뭐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아침 일찍 병원에 온 와이프와 다시 복도에 앉아 분유를 시도했다. 요거트와 이유식도 먹이고, 그나마 잘 받아먹는 쌀과자도 열심히 먹였다.
그리고 오전 회진 시간.
의사 선생님에게 드디어 퇴원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마치 교도소에서 출소를 허락받은 사람처럼 기분이 좋았다.
곧바로 와이프에게 퇴원 소식을 전하고 서둘러 짐을 쌌다. 챙겨야 할 약과 입원 기록 서류를 전달받고, 아이를 구속하고 있던 수액 바늘과 수액걸이까지 모두 떼어냈다.
그제야 속이 시원했다.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니 겨우 3일을 비웠을 뿐인데 훨씬 오랜 시간 집을 떠나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의 상태를 살피고 먹이는 데 집중했다. 다행히 익숙한 집에 돌아와 안심한 덕분인지 그토록 거부하던 분유도 다시 먹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웃지 않던 아이의 얼굴에도 조금씩 웃음이 돌아왔다.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도 퇴원 소식을 전했다. 영상 통화로 아이의 모습을 보여드리며 안심시켜 드렸다.
그런데 통화하는 동안 부모님은 아이뿐 아니라 와이프와 나의 건강까지 걱정해 주셨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우리도 예전에는 부모님의 작은 아이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마 우리의 부모님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아이가 아프거나 힘들 때면 곁을 지키고 힘이 되어 주셨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괜히 울컥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새삼 느꼈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 그리고 서로를 지켜주고 힘이 되어 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
그 평범한 사실들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게 된 시간이었다.

"There is nothing like staying at home for real comfort."
- Jane Austen -
글쓰기
위 글은 아래 원문을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다듬은 글이다.
글쓰기 스터디를 하면서 AI를 활용해 맞춤법을 검사하고 문장을 자연스럽게 다듬는 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다 문득 AI가 수정해 준 결과물을 읽고 만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부분을 어떻게 수정했는지 살펴보며 나의 부족한 점을 하나씩 고쳐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원문과 AI가 수정한 글을 비교하며 개선이 필요한 표현과 문장을 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나의 글쓰기 습관을 점검하고 고쳐 나가고자 한다.
원문과 수정본 비교
색으로 표시된 부분을 비교해 보세요. 띄어쓰기와 문단 나눔도 변경에 포함됩니다.
제목
수정 살펴보기
2박3일을 2박 3일로 띄어 썼다.
감기에서 입원까지
− 원문
13개월차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 가만히 있어도 콧물이 줄줄 흘렀고, 기침을 하면 가래가 가득한 불편한 소리가 들렸다. 이전에도 감기와 장염이 한번에 걸린적이 있어 고생한 기억에 가까운 동네 병원에서 약도 지어와 먹였다. 하지만 주말이 되자 콧물에 숨이 잘 안쉬어져였을까 아니면 목이 아파서였을까 모든 먹는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먹여보려 애를써봤지만, 눈물을 뚝뚝 흘리며 분유와 입으로 다가오는 음식을 거부했다.
아이가 너무 먹지 않으면 탈수가 올 수 있어 수액이라도 맞아야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다급히 옷을 입히고 주말에도 운영하는 큰 소아과 병원을 찾아갔다. 아픈 아이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긴 대기 끝에 청진기만 봐도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와 진료를 볼 수 있었다. 피검사와 수액을 맞아야 한다는 얘기에 맞기 전부터 내가다 고통스러웠다. 이전에도 체혈과 수액을 맞은적이 있었는데 너무너무 힘든 시간이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주사 바늘을 넣기위한 핏줄을 찾는것부터 난관이였다. 혈관을 찾기위해 이리저리 주무르고 팔에 바늘을 찌르고 다시 혈관과 맞추기위해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몸부림치며 대성통곡하는 아이를 품에 안고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이였다. 간신히 수액 라인을 잡고 방으로 이동하는 도중 간호사 선생님이 라인이 빠진것 같다고 다시 해야한다는 얘기를 들었을때 나도모르게 짜증과 화가났다. 겉으로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진 않았지만 속에서는 열불이 나는 순간이였다. 다시 수액 라인을 잡기위해 발등에 바늘을 넣었다 뺏다를 반복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결국 약만 처방 받아 집에 왔지만 다음날까지도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피검사에서 혈당 수치가 너무 낮아 결국 큰 병원 응급실을 찾아갔다. 여기서도 수액 라인을 잡는게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라인을 잡고 입원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이전에 와이프가 5인실로 입원했을때 지옥을 경험했다는 얘기를 하며 2인실로 병실을 잡아주었다. 보호자는 한명만 들어갈 수 있었기에 이번에는 내가 아이와 함께 수액걸이를 끌고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병실로 들어섰다.
+ 수정본
13개월 된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 가만히 있어도 콧물이 줄줄 흘렀고, 기침할 때마다 가래가 가득 찬 듯한 불편한 소리가 들렸다. 이전에도 감기와 장염이 한꺼번에 찾아와 고생했던 적이 있어, 이번에도 가까운 동네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였다.
하지만 주말이 되자 아이는 먹는 것 자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콧물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었던 걸까. 아니면 목이 아팠던 걸까. 어떻게든 먹여보려고 애썼지만,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분유는 물론 입으로 가져가는 모든 음식을 거부했다.
아이가 계속 먹지 않으면 탈수가 올 수 있으니 수액이라도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둘러 아이에게 옷을 입히고 주말에도 진료하는 큰 소아과 병원을 찾아갔다.
아픈 아이들이 어찌나 많던지. 한참을 기다린 끝에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아이는 이제 청진기만 봐도 울음을 터뜨렸다. 피검사를 하고 수액도 맞아야 한다는 말에, 주사를 맞기도 전부터 내가 다 괴로웠다. 이전에도 채혈과 수액 때문에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주삿바늘을 넣을 혈관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팔을 이리저리 주무르며 혈관을 찾고, 바늘을 찌른 뒤에도 위치를 맞추기 위해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아이는 몸부림치며 대성통곡했다. 그런 아이를 품에 안고 지켜보는 시간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겨우 수액 라인을 잡고 방으로 이동하던 중, 간호사 선생님에게 라인이 빠진 것 같아 다시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순간적으로 짜증과 화가 치밀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속에서는 열불이 났다.
이번에는 발등에 바늘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렇게 약만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왔고, 아이는 다음 날까지도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피검사에서 혈당 수치가 너무 낮게 나왔던 터라 결국 큰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이곳에서도 수액 라인을 잡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성공했고 입원 준비를 시작했다.
이전에 와이프가 5인실에 입원했을 때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며 이번에는 2인실로 병실을 잡아주었다. 보호자는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었기에 내가 아이와 함께 입원하기로 했다.
수액걸이를 끌고, 걱정과 두려움을 안은 채 아이와 병실로 들어갔다.
수정 살펴보기
체혈을 채혈로 바로잡고, 입원까지의 긴 과정을 짧은 문단으로 나눴다.
병실에서의 첫날밤
− 원문
2인실로 들어섰을때는 이미 입원해있는 한쪽 침대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고 우리가 지낼 침대로가 짐을 대충 쌓아 올려두었다. 전날부터 수차례 주사와 여러 검사를 해서 그런지 품에서 떨어지자마자 두팔을 뻗어 안아달라며 오열을 시작했다. 빠르게 짐정리를 하고 아이를 안고 침대에 기대 앉아 우는 아이를 달래는 일을 반복했다. 얇은 커튼 너머에 있는 옆 침대의 아기의 엄마와 아기가 너무 신경쓰였다. 문이 닫혀있었지만 옆방 5인실에서 아기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고, 만약 5인실로 입실했다면 와이프 말대로 지옥이 아니였을까 싶다. 와이프가 먹으라고 사준 샌드위치와 음료들이 있었지만 먹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고 울다가 지친 아이와 침대에 기절하듯 잠들었다.
갑작스런 우렁찬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다급하게 아이를 안고 달래며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다. 그리고나서 아이의 응가 냄새를 맡고 머리속이 새하얘졌다. 이 새벽에 어떻하지라는 생각을하며 기저귀를 확인하니 작은 설사를 한 정도였다. 도움이 필요하면 간호사콜을 하라는 간호사분의 말을 떠올리고 침대 위쪽의 호출 버튼을 눌리자 무슨일이냐고 묻는 목소리에 아이가 응가를해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다행히 간호사한분이 오셔서 함께 화장실로가 아이를 씻기고 기저귀를 갈 수 있었다. 물론 기저귀를 갈고 안아서 달래주기까지 병실이 떠나가라 오열했다. 다시 안아서 달래기를 반복하며 몇시에 잠들었는지도 모른채 아이와 다시 좁은 침대에서 함께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옆에서 수액걸이의 긴 수액줄 끝에 잠들어있는 아이를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오늘 빨리 병원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리속을 가득 채웠다. 곧 우렁찬 울음과 함께 깨어난 아이는 품안에 안겨 내려오지 않으려 코알라처럼 찰싹 달라붙어있었다. 다행인것은 품에 안겨 물컵을 두손으로 잡고 살기위해 먹는것처럼 열심히 물을 마셨다. 시간이 좀 지나고 10시가 가까워졌을때 회진을 도는 의사선생님이 가운을 입은 여러 사람들을 거느린채 병실로 들어왔다. 아이는 이미 의사선생님이 무서운 존재로 각인된듯 청진기를 대려고 가까이 오기만해도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아이를 살펴보고 나서 의사선생님이 무언가 먹지 않는다면 퇴원시켜줄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아이와 병원에 갇혀버린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다.
+ 수정본
2인실에는 이미 다른 아기가 입원해 있었다. 한쪽 침대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고, 우리는 반대편 침대로 가 짐을 대충 올려두었다.
전날부터 주사와 검사를 여러 차례 받아서인지 아이는 내 품에서 떨어지자마자 두 팔을 뻗으며 안아달라고 울기 시작했다. 서둘러 짐을 정리한 뒤 아이를 안고 침대에 기대앉아 달래기를 반복했다.
얇은 커튼 너머에 있는 아기와 엄마가 계속 신경 쓰였다. 문이 닫혀 있는데도 옆방 5인실에서는 아기들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만약 우리도 5인실에 들어갔다면 와이프 말대로 지옥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프가 먹으라고 사준 샌드위치와 음료가 있었지만 손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결국 울다 지친 아이와 함께 좁은 침대에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갑작스러운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다급히 아이를 안아 달래며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2시였다. 그때 아이에게서 응가 냄새가 났고,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 새벽에 어떡하지?'
기저귀를 확인하니 설사를 조금 한 상태였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간호사를 호출하라는 말이 떠올랐다. 침대 위쪽에 있는 호출 버튼을 누르자 무슨 일이냐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응가를 해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다행히 간호사 한 분이 와주셨고, 함께 화장실로 가 아이를 씻기고 기저귀를 갈 수 있었다. 물론 그동안 아이는 병실이 떠나가라 울었다. 기저귀를 갈고 다시 안아 달래기까지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이후에도 아이를 안고 달래기를 반복하다 몇 시에 잠들었는지도 모른 채 좁은 침대에서 다시 함께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옆에는 긴 수액줄에 연결된 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오늘이라도 빨리 병원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곧 아이도 우렁찬 울음과 함께 잠에서 깼다. 품에서 내려오지 않으려 코알라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물을 잘 마신다는 사실이었다. 내 품에 안겨 물컵을 두 손으로 꼭 잡고, 마치 살기 위해 마시는 것처럼 열심히 물을 마셨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지자 의사 선생님이 가운을 입은 여러 사람과 함께 회진을 돌며 병실로 들어왔다. 아이에게 의사 선생님은 이미 무서운 존재가 되어버린 듯했다. 청진기를 대려고 다가오기만 해도 울음을 터뜨렸다.
진료를 마친 의사 선생님은 아이가 무언가 먹지 않는다면 퇴원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와 함께 병원에 갇혀버린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다.
수정 살펴보기
첫날 밤과 아침 회진을 문단으로 나누고, 새벽의 당황스러운 생각을 독립된 문장으로 표현했다.
퇴원을 위한 전쟁
− 원문
뭐라도 먹여야된다는 얘기를 와이프에게 전하고 먹일 수 있는 모든것을 챙겨오라고 했다. 분유, 요거트, 쌀과자, 바나나 등 아이에게 먹일 여러가지를 바리바리 싸들고 장모님과 병원을 찾아왔다. 병실로는 환자와 보호자 외에는 출입이 불가능해서 병원 통로 복도 의자에 앉아 아이를 먹이기 위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눕히면 체혈과 수액 바늘을 맞았던 기억 때문일까 분유를 먹이려는 자세만 취해도 울음과 함께 온몸을 바둥거리며 거부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요거트와 쌀과자는 조금씩 받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와이프가 다시 분유를 시도하는 동안 전날부터 아무것도 먹지못해 혼자 병실로가 어제 사둔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먹었다. 이후 여러 시도를 했지만 더 이상 아이가 먹지 않았고 저녁에 2차전을 기약하며 와이프는 집으로 나와 아이는 병실로 향했다.
엄마를 봐서일까 아이가 조금 안정이 되었는지 병실 침대에 혼자 앉혀두어도 더이상 울지 않았다. 가져온 장난감과 인형을 침대에 풀어두고 놀게 두었다. 안정된 모습을 보고 중간중간 분유를 시도했지만 분유는 완강하게 거부당했지만, 다행히 물과 과자는 조금씩 잘먹기 시작했다. 잘놀고 잘먹는 모습을 보고 저녁에는 퇴원할 수 있겠구나 안심하는 순간, 아이의 응가를 처리하는 도중 조금 혈변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급히 간호사분에게 말해드렸고 검사를 위해 응가를 챙겨가셨다. 다행히 아이의 컨디션은 좋아보였기에 검사 결과가 나오면 저녁 회진때 의사선생님이 확인해주신다고 하셨다. 오후6시가 조금 넘을 무렵 회진으로 다시 찾아온 의사선생님은 검사 결과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하셨지만, 내일 오전까지 지켜보고 퇴원을 하라고 하셨다. 오늘 저녁에 퇴원하면 안되냐고 물어보았지만 안된다는 단호한말에 또 다시 아이와 병원에 갇혀버린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다.
+ 수정본
뭐라도 먹여야 했다. 와이프에게 상황을 전하고 아이가 먹을 만한 것은 전부 챙겨 오라고 했다.
와이프는 분유와 요거트, 쌀과자, 바나나 등을 바리바리 싸 들고 장모님과 함께 병원으로 왔다. 병실에는 환자와 보호자 외에는 들어올 수 없어 복도 의자에 앉아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퇴원을 위한 전쟁이었다.
누운 자세가 채혈과 수액 바늘을 맞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걸까. 분유를 먹이려는 자세만 취해도 아이는 온몸을 바둥거리며 울었다. 다행히 요거트와 쌀과자는 조금씩 받아먹기 시작했다.
와이프가 다시 분유를 먹이려고 애쓰는 동안 나는 잠시 병실로 돌아갔다. 전날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터라 사두었던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먹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먹이기를 시도했지만 아이는 더 이상 먹지 않았다. 저녁에 다시 도전하기로 하고 와이프는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아이를 데리고 병실로 향했다.
엄마를 만나서였을까. 아이가 조금 안정을 찾은 듯했다. 침대에 혼자 앉혀 두어도 울지 않았고, 가져온 장난감과 인형을 꺼내주자 제법 잘 놀았다.
그 모습을 보고 중간중간 분유를 시도했지만 여전히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래도 물과 과자는 조금씩 잘 먹기 시작했다.
아이가 잘 놀고 조금이나마 먹는 모습을 보니 저녁에는 퇴원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그런데 기저귀를 갈다가 응가에 피가 조금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깜짝 놀라 간호사분에게 말씀드렸고, 검사를 위해 응가를 가져가셨다. 다행히 아이의 컨디션은 좋아 보였다. 검사 결과는 저녁 회진 때 의사 선생님이 확인해 주시기로 했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의사 선생님이 다시 병실을 찾았다. 검사 결과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하셨지만, 다음 날 오전까지 상태를 지켜본 뒤 퇴원하라고 하셨다.
오늘 저녁에 퇴원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안 된다고 하셨다.
결국 아이와 병원에서 하룻밤을 더 보내야 했다. 다시 막막함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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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기 시도와 검사 결과를 나눠 서술하고, 퇴원할 수 없다는 대답을 짧은 문장으로 강조했다.
병실에서의 두 번째 밤
− 원문
저녁에 다시 병원에온 와이프에게 잠시 아이를 맡기고 샤워실로가 샤워를 했다. 이튿날 퇴원을 예상했기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버티고 있었지만, 하룻밤을 더 보내야한다는 말에 앞으로의 전쟁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샤워를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병실 옆자리에 있던 엄마와 아이는 퇴원을 했고 2인실을 아이와 둘이서만 쓰게되어 마음이 조금은 편했다. 샤워를 마치고 다시 와이프와 병원 복도에서 아이에게 이유식과 요거트, 과자를 열심히 먹이며 다음날 퇴원을 기원했다.
와이프가 집으로 돌아가고 다시 아이와 병실로 돌아와 짐정리를 하고 장난감과 인형으로 아이와 놀아줬다. 기분이 좀 좋아졌는지 침대 난간을 잡고 일어나 흔들고 이리저리 탐색을 시작했다. 나는 중간중간 물과 과자를 건네며 분유도 얼른 먹기를 바랬다. 10시정도 아이와 잘준비를 마치고 내일은 꼭 퇴원하기를 기도하며 잠에 들었다. 자는 도중 시끌벅적한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옆자리에 엄마와 아이가 병실의 새로운 룸메이트로 들어오는 소리였다. 이제 아이가 많이 안우니 괜찮겠지하고 다시 잠에 들었지만, 새벽 2시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어제와 같이 잠에서 깨었다. 데자뷰처럼 새벽 응가를 한 상태였고, 이번에는 침착하게 간호사분을 호출하여 아이를 씻기고 기저귀를 갈았다. 문제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옆자리의 아기도 공명하듯 함께 울음을 터트려 버린것이였다. 옆자리의 아기 울음 소리 때문이였을까 아니면 낮에 잠을 많이 자서였을까 기저귀를 간 이후에도 아이는 잠을 잘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새벽 4시가 넘게까지 아이를 안아주고 놀아주기를 반복하다 기절하듯 아이와 함께 잠에 들었다.
+ 수정본
저녁에 와이프가 다시 병원을 찾아왔다. 잠시 아이를 맡기고 샤워실로 향했다.
금방 퇴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하룻밤을 더 보내야 한다니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의 전쟁을 준비하는 기분으로 샤워를 마쳤다.
그사이 옆 침대에 있던 엄마와 아이가 퇴원했다. 2인실을 아이와 둘이서만 쓰게 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샤워를 마친 뒤 와이프와 함께 다시 병원 복도에서 아이에게 이유식과 요거트, 과자를 열심히 먹였다. 내일만큼은 꼭 퇴원할 수 있기를 바랐다.
와이프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는 아이와 병실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장난감과 인형을 꺼내 놀아줬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아이는 침대 난간을 잡고 일어나 흔들어 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탐색하기도 했다. 나는 틈틈이 물과 과자를 건네며 분유도 얼른 먹어주기를 바랐다.
밤 10시쯤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쳤다. 내일은 꼭 퇴원하기를 기도하며 잠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끌벅적한 소리에 눈을 떴다. 옆 침대에 새로운 아기와 엄마가 들어오고 있었다. 이제 우리 아이도 많이 울지 않으니 괜찮겠지 싶어 다시 잠들었다.
하지만 새벽 2시, 어제와 똑같이 아이의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이번에도 새벽 응가였다.
데자뷔 같은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침착했다. 간호사분을 호출해 아이를 씻기고 기저귀를 갈았다.
문제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옆 침대 아기까지 공명하듯 울음을 터뜨렸다는 것이었다.
옆 아기의 울음소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낮에 잠을 많이 자서였을까. 기저귀를 갈고 난 뒤에도 아이는 좀처럼 잠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새벽 4시가 넘도록 아이를 안아주고 놀아주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또다시 기절하듯 아이와 함께 잠들었다.
수정 살펴보기
샤워와 두 번째 새벽의 사건을 분리하고, 반복되는 상황을 짧은 문장으로 정리했다.
드디어 집으로
− 원문
누군가 아버님하며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시간은 아침 여섯시반, 아이가 어제 혈변을 봐서 엑스레이를 한번 찍어봐야할 것 같다고 깨우는 소리였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아이를 안고 엑스레이실로가 오열하는 아이를 붙들고 아침부터 전쟁을 치뤘다. 병실로 돌아와 진정시키고 퇴원을 위해 의사선생님이 오기전에 뭐라도 먹여야겠단 생각에 아침일찍 병원에온 와이프와 또 다시 병원 복도에서 분유를 시도하고 요거트와 이유식을 먹이고 그나마 잘 받아먹는 쌀과자를 열심히 먹였다. 오전에 회진으로 찾아온 의사선생님의 퇴원해도 좋다는 얘기에 교도소에서 출소를 허락받은 사람과 같이 기분이 좋았다. 퇴원 소식을 와이프에게 전하고 빠르게 짐을싸 퇴원준비를 마쳤다. 챙겨야할 약과 입원 기록 서류들을 전달 받고 아이를 구속하고 있던 수액 바늘과 수액걸이를 모두 떼어냈을때 너무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와 함께 집에 다시 돌아왔을때는 3일이 아니라 훨씬 긴시간을 집을 비워둔것만 같이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의 컨디션을 확인하고 먹이는 것에 열중했다. 정말 다행히도 집에 돌아와 안심해서인지 그렇게나 안먹던 분유도 먹기 시작했고 몇일동안 웃지 안던 얼굴에 조금씩 웃음이 살아났다.
집에 돌아와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퇴원 사실을 알리고 영상통화로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며 안심시켰다. 통화를 하며 와이프와 나의 건강도 걱정해주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예전에는 부모님의 작은 아이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마 우리의 부모님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아플때나 힘들때 곁에서 지켜주고 힘이 되어 주었다는 생각에 괜히 울컥하기도 했다. 이번일을 겪으며 마음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는 것과 서로를 지켜주고 힘이 되어주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왠지모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 수정본
"아버님."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반이었다.
어제 아이가 혈변을 봤으니 엑스레이를 한 번 찍어봐야 할 것 같다며 깨우는 소리였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아이를 안고 엑스레이실로 향했다. 오열하는 아이를 붙들고 아침부터 또 한 번의 전쟁을 치렀다.
병실로 돌아와 아이를 진정시켰다.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오시기 전에 뭐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아침 일찍 병원에 온 와이프와 다시 복도에 앉아 분유를 시도했다. 요거트와 이유식도 먹이고, 그나마 잘 받아먹는 쌀과자도 열심히 먹였다.
그리고 오전 회진 시간.
의사 선생님에게 드디어 퇴원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마치 교도소에서 출소를 허락받은 사람처럼 기분이 좋았다.
곧바로 와이프에게 퇴원 소식을 전하고 서둘러 짐을 쌌다. 챙겨야 할 약과 입원 기록 서류를 전달받고, 아이를 구속하고 있던 수액 바늘과 수액걸이까지 모두 떼어냈다.
그제야 속이 시원했다.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니 겨우 3일을 비웠을 뿐인데 훨씬 오랜 시간 집을 떠나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의 상태를 살피고 먹이는 데 집중했다. 다행히 익숙한 집에 돌아와 안심한 덕분인지 그토록 거부하던 분유도 다시 먹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웃지 않던 아이의 얼굴에도 조금씩 웃음이 돌아왔다.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도 퇴원 소식을 전했다. 영상 통화로 아이의 모습을 보여드리며 안심시켜 드렸다.
그런데 통화하는 동안 부모님은 아이뿐 아니라 와이프와 나의 건강까지 걱정해 주셨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우리도 예전에는 부모님의 작은 아이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마 우리의 부모님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아이가 아프거나 힘들 때면 곁을 지키고 힘이 되어 주셨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괜히 울컥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새삼 느꼈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 그리고 서로를 지켜주고 힘이 되어 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
그 평범한 사실들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게 된 시간이었다.
수정 살펴보기
퇴원 과정과 집에 돌아온 뒤의 감정을 나누고, 마지막에 집과 가족의 소중함을 별도 문단으로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