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실로 출근하겠습니다.

review

최근 “운동장으로 출근하겠습니다.”라는 책을 읽고 지금은 이미 꺼져버린 숯과 같은 나의 취미에 불씨를 살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글을 써보려 한다. 처음 이 책을 읽었던 이유는 함께 일하는 기획자분이 책을 출판했다는 소식과 첫 회사에서 동료들과 몇 년간 풋살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책은 판교 최고의 여자 풋살팀 팀원들이 써 내려간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었고, 풋살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풋살에 대한 열정 그리고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노력이 담겨있었다.

시작에 앞서 나의 취미를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나의 취미는 브레이킹이였다고 말하고 싶다. 과거형인 이유는 처음 글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이미 꺼져버린 숯에 작은 온기만 남은채, 한 달에 한 번 정도 몸의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바닥을 뒹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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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 않은 시작

책 내용 중 풋살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관한 내용도 있었는데 코로나 시국을 버티며 근질근질했던 몸을 해방시키고자 했던분, 골때녀로 인해 핫해진 여자 풋살에 몸을 맡기신 분들이 있었다. 이러한 계기들을 보며 나의 취미가 시작된 계기가 무엇이었나 떠올려 보았다.

대학 시절 단순히 학창 시절을 재미있게 보내기 위해 재미있어 보이는 힙합 동아리에 가입하였고, 나의 신체는 브레이킹에 적합하다는 선배의 영업에 넘어가 시작하게 되었다. 흔히들 재미있어 보이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본인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하는 활동을 취미라고 한다면, 나 또한 흔히들 취미를 시작하는 것과 비슷하게 시작한 것 같다. 이렇게 특별하지 않게 시작한 취미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특별한 일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아직도 신기하기만 하다.

개인적으로 “운동장으로 출근하겠습니다.”에서의 풋살을 시작하게 된 계기들도 비슷한 시작이지 않았나,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풋살을 시작하고 그들의 인생에 녹아든 일들을 읽으며 지금도 활활 타오르는 것만 같은 그들의 열정이 부러웠고, 차갑게 식은 나의 열정을 바라보며 지금 당장이 아닌 언젠간 나도 다시라는 생각을 가지는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무모한 열정

나는 취미 활동에 나름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운동장으로 출근하겠습니다.”에서 본 그들의 풋살에 대한 열정에 정말 깜짝 놀랐다고 말하고 싶다. 책 내용만 보았을 때 내가 느낀 그들은 회사로의 출근보다 운동장으로 출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서비스 오픈보다 풋살팀의 승리에 더욱 기뻐하며 십자인대가 파열된 다리를 이끌고 운동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었다.

앞선 내용에서의 일들이 나에게도 있었던 일들과 비슷한 부분들이 많아 책을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십자인대가 파열된 다리를 이끌고 운동장으로 향하는 모습에서 저 정도면 그만둬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과 나도 저런 적이 있었다는 기억을 떠올리며 정말 무모했던 열정이 아니었는지 생각하며 웃음이 나왔다.

손가락이 부러졌을 때 개발자로서 키보드 타이핑을 걱정하는 게 아닌 연습을 어떻게 하지 걱정했던 기억과 발가락 인대가 늘어나 깁스를 하고 연습실로 가 물구나무만 주구장창 섰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금 불이 붙으려는 작은 온기에 따뜻함을 느꼈다.



회고에서 찾지 못한 행복

이전에 10년간 개발자로서의 회고를 쓰고나서 좋았던 기억에 관한 내용이 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이 있었다. 정말 웃긴 건 책에서 골을 넣었을 때와 풋살팀의 승리를 기뻐하는 내용을 읽으며 회고 중 그렇게 떠오르지 않던 좋은 기억이 취미 활동의 기억에서는 한 번에 떠올랐다. 잘되지 않던 기술이 성공하여 작은 행복을 느꼈던 기억을 시작으로 대회에서 처음으로 예선전을 통과하여 아이처럼 기뻐했던 일과 배틀에 참가하여 우승했던 감격스러운 순간을 떠올렸다.

앞서 말했던 내가 흔하게 참가했던 배틀은 스트릿댄스 배틀 혹은 브레이킹 배틀이다. 요즘 스우파가 유명해지며 아는 분들도 많겠지만, 간단히 배틀을 설명하자면 DJ가 틀어주는 음악에 본인이 준비한 동작을 뽐내거나 음악에 맞추어 자유롭게 춤을 추고 심판(Judge)에게 선택을 받으면 이기는 대회이다. 내가 우승했던 배틀중 하나는 만원빵 배틀이라는 아주 작은 대회였는데 참가비 만 원을 받고 우승자에게 상금으로 참가비를 몰아주는 대회이다. 사실 이 대회에서 함께 팀을 이룬 팀원의 버스를 타고 우승하게 되었지만, 그때의 기쁨은 인생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도파민 폭발을 느꼈던 것 같다. 벅차오르는 기쁨 속에서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벌컥벌컥 마셨고, 인사불성이 되어 수원에서 서울까지 택시비를 우승 상금으로 지불하였다.

즐거움을 얻기 위해 하는 활동이라 행복했던 기억들이 한 번에 쉽게 떠올랐던 걸까? 그렇다면 열정을 불태웠던 취미와 멀어지고 있는 나는 앞으로 더 이상 떠오를 행복한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그러곤 행복을 위해 다시금 발버둥 치기 위한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고, 계획을 짜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나 자신을 보며 아직 나의 행복 그리고 나의 열정이 죽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연습실로 출근하겠습니다

사실 큰 기대 없이 풋살이라는 주제에 끌려서, 함께 일하는 기획자분이 쓴 책이니 읽어봐야지 하고 시작한 "운동장으로 출근하겠습니다."는 잃어버린 나의 열정과 행복을 찾아주었고, 책을 쓰신 분들과 팀카카오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만약 무언가 열심히 했지만, 열정이 식어버린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그리고 지금 작게 불이 붙은 열정이 식기 전에 나는 다시 연습실로 출근을 시작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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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a man lose everything else in the world, but his enthusiasm and he will come through again to success."

- William Howard Arnold -